Culture
home

30일: 소소한 일상의 여유, 그리고 나를 탐구하는 시간

<열심히 달려온 당신, 쉬어가요>에서도 소개해 드렸듯 클로버추얼패션에서는 감사의 마음을 담아 장기근속하신 분들께 ‘리프레시 먼스’로 쉼을 선사하고 있어요. 작년까지 한국 19명, 글로벌 24명의 CLOver들이 새로고침을 하셨는데요! 오늘은 클로의 초기 개발자로서 여러 프로덕트를 디벨롭하며 함께 성장해 온 Software Engineer인 Daniel이 또 어떤 의미있는 쉼을 가지고 돌아왔는지 소개해 드릴게요.

Q. Daniel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Software Engineer인 Daniel입니다. 13년째 클로에서 근무 중으로 Founder인 Jaden을 제외하면 개발자 중 입사 순위 다섯 손가락 쯤 되는 것 같아요. CLO, CLO-SET, Jinny 등 다양한 프로덕트의 기능을 개발했고 지금은 Colorway* 리뉴얼, EveryWear** 등 프로덕트의 경계를 넘나드는 기술들을 연구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최근 몇 년간은 Tech Lead로서 함께하는 동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력을 주기 위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Colorway: 원단의 색채를 다양한 의복에 베리에이션 해주는 기능.
**EveryWear: 유저가 CLO, Marvelous Designer로 제작한 의상을 다양한 디지털 공간에 맞게 최적화하는 서비스.

Q. 클로에는 어떻게 조인했고 오늘까지의 과정은 어떠했나요?

스타트업 개발자가 본래 걷고자 했던 길은 아니었어요. 평범한 취준생들처럼 컴퓨터 그래픽스 석사 졸업 후 대기업에 취직하려고 생각했거든요. 실제로 영어공부하고 원서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연구실 교수님께서 산학협력 관계였던 클로에서 일해 보는 것은 어떤지 추천을 해주셨어요. 당시는 회사 규모가 굉장히 작았고 개발자 모집도 쉽지 않았던 때인데 바라던 전공자가 나타나니 다들 반겨주셨지요. 면접본 날 회식자리를 가지면서 자연스러운 분위기에 동화되며 회사에 합류하게 되었어요.
창립 초기 멤버로 들어왔을 때는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는 창작의 고통을 많이 겪었는데요. 지금도 그렇긴 하지만 당시는 더욱 세상에 없던 프로덕트를 만드는 과정이었기에 레퍼런스로 삼을 만한 것도, 유저들도 없었기에 정답이 없는 것을 계속하는 느낌이었죠.
하지만 정해진 것이 없다는 건 제한 없이 시도해 볼 수 있다는 의미도 되거든요. Jaden을 비롯해 동료들과 아이디어를 내면,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기술들을 리서치하고, 여러 방식으로 개발해 보는 과정들이 흥미로웠어요. 그러면서 단순했던 소프트웨어 화면은 유저가 원하는 다양한 기능들로 채워졌어요. 세계 각 지역의 패션, VFX, 아바타 제작사 등 다양한 산업군에서 러브콜이 오는 순간들도 목격했고요. 회사의 비전에 맞춰 프로덕트 라인업도 다양해지면서 핵심 기술과 소프트웨어 구조를 잘 이해하고 있던 제가 자연스레 여러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지요.
돌이켜보면 열의 있는 동료들과 다양한 일을 주도적으로 함께할 수 있던 행운의 13년을 보낸 것 같아요.
약 12년 전, 석사과정을 갓 마치고 클로에 합류했던 Daniel

Q. 번아웃도 으레 찾아올 수 있을 텐데, Daniel은 어떠셨어요?

문득 내가 회사에 기여를 하고 있는 게 맞는지 의심스러웠던 적이 있었어요. 타 기업에 재직하고 있는 친구들은 승진을 하는데, 우리는 직급 개념이 따로 없는 ‘직무 중심’의 조직이라 회사는 성장하지만 나는 제자리에 있는 건 아닌가 싶던 거죠. 그때가 번아웃이 가장 심한 시기였어요.
그러다 운이 좋게 Jinny라는 신규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새롭고 다양한 분들과 협업하고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어요. Tech Lead*라는 역할도 수행하면서 저의 경험과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졌고, 자연스레 주변으로부터 인정을 받게 되었죠. 게다가 리프레시 먼스라는 정책도 생겨났고요!
*Tech Lead: 리더십의 일종으로 기술의 전문성을 갖추고 지속적으로 팀과 프로덕트의 비전/로드맵을 설정해 나가는 클로 개발조직의 positive influencer

Q. 리프레시 먼스 들어가기 전까지 준비는 어떻게 하셨어요?

제도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가족과 리프레시 먼스를 사용할 시기를 상의했어요. 한달이라는 시간 동안 업무를 볼 수 없기에 우선적으로 진행 중이던 Colorway 프로젝트를 어느 정도 일단락 하고 가야겠단 생각을 했어요. 기간을 추산해 보니 한 달 정도면 충분하다고 보았는데 결과적으로 이는 오산이었어요. 그냥 떠나는 건 무책임하다고 생각해서 일정을 몇 번 변경하다 보니 하루 이틀 미뤄지던 리프레시 먼스 시작일은 결국 네 달까지 뒤로 밀리더라고요. 아니 사실 완전히 프로젝트를 끝내진 못했어요. 함께 프로젝트하는 친구들을 의식적으로 컨택포인트로 참여시켰는데, 그럼에도 제가 여러 티켓에 계속 소환되는 상황에 놓였거든요. 그러더니 어느 날 누가 그러더라고요. “어차피 Daniel 계셔도, 안 계셔도 문제가 있는 상황은 똑같을 것 같다”라고요. 그 이야기를 듣곤 마음을 놓고 작년 11월에 떠나기로 결정했죠.

Q. 리프레시 먼스 다녀오시기 전에 세웠던 계획이 있으셨나요?

원래는 여행을 다녀온 후 운동이나 악기 등 활동을 계획했었어요. 특히, 아내와 취미생활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많았는데… 여행 말고는 계획대로 되지 않더라고요. 막상 무언가 하려고 보니 사전에 준비해야 하는 것들이 참 많다는 걸 깨달았어요. 무언갈 배우려면 과정을 알아보고 최소 몇 주 전 등록해야 하고, 만나고 싶던 분들과도 시간 약속을 미리 잡아야 하고요.
가장 큰 문제는 제가 쉬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는 점이었어요. 사실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보면 긴 시간을 쉬어본 적이 없었어요. 학교를 휴학해 본 적도 없고, 군대 다녀온 후 말년휴가를 몰아 써서 바로 복학했고, 취직도 석사 후에 바로 했고요. 그래서 한 달간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실천하는 것이 어색하고 스트레스 받았는데 아내가 문득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리프레시고, 그냥 쉬는 것도 의미가 있다”라고 하더라고요. 그날부터는 매일에 집중하고 굳이 열심히 고민해서 무엇인가를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세 가족이 오붓하게 다녀왔던 도쿄여행. 수줍게 도쿄타워 앞에서 브이

Q. 구체적인 계획이 없었더라도 의미 있는 발견을 하셨을 수도 있겠는데, 어떠세요?

가족과 함께하는 일상을 알게 되었어요. 물론 아내는 저를 계속 케어해야 하는 시간들을 보냈겠지만요.
우선 세 살 딸과 함께하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어요. 평소에는 제가 퇴근이 늦는 날이 많았고, 그래서 집에 도착하면 딸이 이미 잠이 들어 거의 놀아주지 못했었어요. 주말엔 아내의 배려로 늦잠을 자니 주말도 순식간에 지나갔고요. 그런데 출퇴근 없이 한 달간 오롯이 집에만 있게 되니 자연스럽게 딸과 마주할 시간이 생겼어요. 매일 제가 딸의 어린이집 등하원을 책임지고, 그간 시간이 안된다고 못 갔던 장난감 가게도 같이 가고, 여행에서는 계속 안고 다녔고요. 초반에는 아빠가 계속 곁에 있어 낯설어하던 아이도 리프레시 먼스가 끝날 때쯤에는 아빠가 왜 다시 회사에 가야 하는지 이해를 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많이 가까워졌구나’ 하면서 뿌듯했어요.
아내와도 마찬가지였어요. 점심에 함께 외식을 하러 나갔는데, 아내가 무척 기뻐하는 거예요. 생각해 보니 외식, 특히 점심을 집 밖에 나와서 먹었던 기억이 없던 거죠. 평일에는 계속 회사에 있고, 주말에는 피곤하니 집에서 먹다 보니까요.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 그게 굉장히 좋았어요.
참, 좋은 소식이 하나 있는데… 제가 둘째를 가졌습니다! 저도 많이 놀랐는데요. 첫째는 생각보다 긴 기다림을 통해 생겼는데 둘째는 생각지도 못하게 수월하게(?) 생겼어요. 역시 여유가 있어야 하는구나라고 느꼈고 이게 바로 리프레시 먼스의 순기능이라고 해야 할까요? 나라에서 우리 회사에 상을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딸과의 즐거운 추억을 가득 만든 Daniel.
딸을 어디서든 껴안고 다녔다.

Q. 그 밖에 본인을 돌아보거나 탐구하는 과정도 있었어요?

평소와는 달리, 무언가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시간적, 심적 여유를 많이 가졌는데, 특히 리더십에 대해서 찾아보고 생각 정리를 했던 것 같아요. 최근 몇 년 새 개발팀 규모가 크게 늘었고 그 가운데서 저는 여러 후배 동료들에게 여러 인사이트를 줘야 하는 순간이 늘어났지만, 상대적으로 제가 준비가 안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한 달간 ‘어떻게 하면 주변에서 좋은 리더가 될 수 있을까’ 혹은 ‘주변에서 긍정적으로 인정받는다는 것은 무엇일까'를 많이 고민했어요.
여러 자료를 탐색한 결과 깨달은 바는, 시니어로서 팀, 특히 프로덕트의 비전과 기술 방면에 있어 방향 설정과 의사결정에 많은 시간을 쏟아야겠구나 였어요. 업무의 세부사항은 후배들에게 믿고 기회를 줘야 하고 저는 그들에게 동기를 주는 것이에요. 기술적으로 뛰어난 분들이 많이 합류하시는데, 그분들이 본인의 역량을 펼칠 수 있게끔 클로라는 독특한 조직 문화의 맥락, 히스토리와 핵심 가치들을 제대로 나누는 것이 저의 역할인 것이죠. 이게 바로 우리 회사에서 정의하는 Leadership, 즉  Positive Influencer가 아닐까요?

Q. 리프레시 먼스, 아쉽거나 다음 리프레시 먼스 때 하고 싶은 것은 없었어요?

한 달이 생각보다 빨리 지나가더라고요. 그래서 너무 디테일하지 않아도 버킷리스트 같은 것은 마련해 두는 게 좋다고 느꼈어요.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무언가 취미 강좌를 들으려 해도 사전 등록을 해야 하는 것도 필요하니까요. 세세하게 계획을 세우는 것은 진정한 쉼이 되진 않겠지만, 그래도 값진 휴식을 위해서 대략적인 아웃라인은 세워둬야 할 것 같아요.
또 한 가지, 가족들과도 더욱 의미 있는 시간 보내고 싶어요. 이번에는 주로 아내, 딸과 시간을 보냈지만 부모님과는 그러지 못했거든요. 더 나이 들기 전에, 그리고 부모님이 건강하실 때 함께 여행 가고 싶어요. 그리고 몇 년 후면 또 아이도 클 테니까, 좀 더 액티브한 활동도 할 수 있을 것 같고요.

Q. 리프레시 먼스를 떠날 동료들께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을까요?

무조건 쉬세요!!! 여의치 못할 경우 한 달 급여를 더 받을 수 있는 옵션*도 있지만, 시간은 돈으로도 못 산다는 말이 있잖아요. 저는 동료분들이 금전보다는 꼭 쉬는 걸 택하셨으면 좋겠어요. 저는 리프레시 먼스 한 달 동안 놀라울 정도로 에너지를 회복했고 (때로는 넘칠 정도로) 스스로를 재충전하는 계기가 되었는데, 다들 같은 경험 했으면 해요.
그리고 슬랙이나 메일과는 가급적 멀어지세요. 저는 나름 책임감, 오너십으로 쉬는 기간에도 슬랙 채널에 드나들었는데, 동료가 DM으로 “네가 계속 슬랙에 접속해 있으면 다른 사람들도 리프레시 먼스 휴가 떠났을 때 너와 똑같이 해야 하는 줄 오해한다. 소중한 휴가를 받은 만큼 잘 쉬다 왔으면 한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아차!’ 싶었어요. 그러니 여러분도 가능한 휴식에 집중하면 좋겠습니다. 물론, 떠나 있는 동안 업무 공백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도록 충분한 인수인계 과정은 필요하고요.
*클로에서는 피치 못한 사정으로 인해 리프레시 먼스 휴가를 갈 수 없는 경우, 한 달 급여에 상응하는 Refresh Contribution을 취하실 수 있게 하고 있어요.

Q. 다녀오시고 급박한 일정들이 이어졌는데 앞으로의 목표가 있나요?

복귀 하자마자 한 2주간은 일정이 굉장히 많았어요. 클로 해외 오피스 디자이너들이 서울 오피스에 방문해서 진행해야 할 협업 업무가 있었고, 연말에 Dev-day*도 했었죠. 이외에도 제가 깊이 관여하고 있는 기능 관련 이슈들을 빨리 해결해야 하는데, 공백 기간 동안 신규 서비스에 지원이 필요한 부분들도 많아졌고 줄여야 할 크래쉬도  많이 보였고요. 그래서 몇 주간 이에 대해 대응했어요.
목표라 하면 역시 ‘Colorway 리뉴얼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는 게 아닐까 하네요. 해당 기능은 우리 프로덕트에 마련된 지 10년 정도 되었는데, 리프레시 먼스를 떠나기 전에 몇 달 동안 유저가 원하는 방향으로 추가 기능을 만드는 것에 대한 논의를  진행했어요. 이제는 성능 개선과 심리스 워크플로우 기술을 개발하는 게 남아 있어서 앞으로는 이 부분에 매진할 것 같아요.
더불어, 유저와의 커뮤니케이션을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도 고민을 계속하고 싶어요. 작년 11월에 있었던 User Summit Seoul에서 유저들과 직접 이야기해보니, 내부에서는 많은 기능을 개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저들이 체감을 못하고 있는 것도 좀 보였거든요. 물론 UX Designer, 3D Design Implementation Specialist들도 가교 역할을 잘해주시기는 하지만, 개발자들도 유저 피드백에 더욱 신경을 쓰는 구조가 되었으면도 해요. 그래야 쫓아오는 경쟁자들과의 격차도 더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Dev-day: 1년에 한 번, 클로버추얼패션에서 일하는 전 세계의 개발자들이 모여서 그간의 연구 성과나 고찰, 지식을 나누는 교류의 장
인터뷰 내내 Daniel이 얼마나 충분한 휴식과 재충전하고 돌아오셨는지 느낄 수 있었어요. 무엇보다도 일상의 소중함을 느끼고,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가졌다는 점에서 Daniel의 앞으로의 삶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시간들이었을 거라 생각해요.
이번 경험을  발판삼아, Daniel의 두 번째 리프레스 먼스는 사전에 간단히라도 리스트를 작성해서 더 알차게 보내시길 기원할게요. 앞으로도 가족과 더욱 다양한 활동을 하고, 동시에 Daniel 자신에게도 다시금 충전의 기회를 주어 그 에너지를 주변에 나누며 함께 성장할 수 있기를 응원하겠습니다